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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1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


출처 : 김춘진,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문제의식과 자기발견>, <<외국문학연구>>8호, 2001.
 

- 라틴아메리카의 이름을 찾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붐 소설의 노력은 마침내 마술적 리얼리즘을 잉태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초현실주의적이거나, 표현주의적 경향의 일부로 파악되기도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전통의 맥락을 떠나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 라틴아메리카의 아이덴티티에 다가가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정체된 역사적 현실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체가 있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이며, 현실을 환상을 통해 묘사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다.

- 분명, 마술적 리얼리즘은 지역주의, 네오리얼리즘, 사회비판소설 등 라틴아메리카 전통의 문학적 토양에서 배양되었지만, 파리를 통해 전수된 유럽 모더니즘 소설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붐 첫 세대라 할 수 있는 아스뚜리아스나,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꼬르따사르, 가르시아 마르께스, 푸엔떼스, 바르가스 요사 등은 모두 파리 생활을 체험하고 불란서 문단의 조류와 접촉했었다는 데서 붐세대는 동시에 파리세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적 자각의 체험이다. 물론, 그 근대적 자각의 한계도 분명해진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합리성에 근거한 계몽주의적 현실 인식과는 차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한계 자체의 인식도 아이덴티티 체험의 일부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운명이었을 것이라면 말이다.

- 전통성과 근대성이 복합된 사회적 이중구조는 리얼리즘을 완전히 극복한 것도 아니고 모더니즘을 완성한 것도 아닌 붐 소설의 이중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리얼리즘은 역동적 현실보다 정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데 적합한 예술적 거울이다. 19세기적 유럽의 리얼리즘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일그러지고 흔들리는 상을 반영해내기에는 그리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리얼리즘이 모더니즘으로 이행하면서 비로서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그들 사회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역동적인 상을 표현해낼 다원적 서사 구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현실 표현에 맞는 그들 나름의 언어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적이면서 리얼리즘적이고,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그런 이중적 언어였다. 또한, 그것으로 표현하려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중적 이며 변증적이어야 했다. 그것은 원주민/이주민의 이중적 구조와, 자연/문화의 역동적 구조를 근대/전통의 이중적 언어와 역사/신화의 변증적 마술로 종합해낼 수 있었던 마술적 리얼리즘이었다.

- 아마도 마술적 리얼리즘의 이중성과 변증성에서 모더니즘과 탈근대주의가 동시에 논의될 수 있는 배경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 이중성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부추기려 한다면, 그 변증성은 역사와 신화가 혼재하는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마술적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절대시하려 한다. 서구의 이성중심적 형이상학의 뿌리를 흔들어 댔다는 보르헤스의 탈근대적 사유에도 모든 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 인디언 문화처럼 어느 문화가 다른 문화에 의해 억압될 수밖에 없다는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 계급의 논리가 이중적으로 얽혀 있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기원과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의 이중성을 내포한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도 서구 전통의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을 거부한다는 데서 탈근대주의적 작가로 평가되지만, 그의 탈근대적 역사 인식도 이중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성중심주의를 배척하고 진정한 라틴아메리카의 본원으로 되돌아가려는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도 이미 자연/문화, 원시/문명, 라틴아메리카/서구의 이항 대립에 근거한 이분법적 서열화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에서도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중심을 부정하려는 탈근대적 사유와 중심을 확인하려는 근대적 사유가 얽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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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0/21 16:45 Trackback. :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