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 : 어떤 핀끝


이정록, <콧구멍만 바쁘다> / 최종득 <찐드기쌤, 쫀드기쌤>


두 개의 동시집, 두 개의 어린이
- 이정록 <<콧구멍만 바쁘다>>, 최종득 <<찐드기쌤, 쫀드기쌤>>




가끔 어른들이 머리 맞대고 싸운다. 이게 진짜 애들 모습이네 아니네 한다. 어느 누구도 결코 자신의 생각을 굽힐 생각을 않는다. 모두 언젠가 한 번 만난 애들, 혹은 매일 같이 만나는 애들을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온 ‘경험’을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도통 합의를 이룰 수 없을 밖에. 결국, 허무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 이런 애도 있고. 저런 애도 있지”.

하물며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동문학에서는 작품 속에 표현된 어린이가 현실감이 있네 없네 하는 물음과 대답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런 우문도 없겠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를 때가 많다. 다만, 작가가 본 구체태로서의 어린이가 문학 속에 어떤 이야기와 내면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호소 하는가 만이 텍스트의 결을 따라 만나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여기, 새로 나온 동시집 속에 나는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어린이들의 구체적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이정록의 시집에서는 얼굴이 “꽝”이라고 여자 친구에게 차여서 기분이 “꽝꽝”이라고, 혹은 “꿀밤 맞으려고/내 머리가 단단한 게 아니”라며 빠드등 단단한 이를 꾸악 물고 있는 카랑카랑한 아이들이 보인다. 때로는 어부인 엄마 아빠의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태풍보다도 지금 당장 “송곳니 한 개” 뽑는 것이 더 큰 아픔이고 고통이라는 아이의 진실한 내면을 ‘교훈’적 가공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학교 담장 허물고 나서 좋은 이유는 딱 하나 “지름길”이 생겨서 “5분” 더 잘 수 있다는 명민한 계산력에 탐복 하지 않을 수 없다. 담장을 허물어 공동체를 품에 안는 풍요로움보다도, 달콤한 꿀 한 스푼 입에 가득 넣어 입 속에서 살금살금 동굴리듯, 꿀잠 잘 수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은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최종득의 시에는 바다 향이 난다. 카랑카랑한 폭풍우 같은 아이의 틈에서 부드러운 거품 같은 따스함을 발견한다. 마치 바닷가 모래에서 조각난 조개 틈 사이에 빛나는 빛깔을 읽어내듯, 아이들 골려대는 “깡패” 민철이도 가끔은 “차에 치여 죽은” 강아지 생각에 눈물을 흘릴줄도 알고, “받아쓰기 가장 못하는 한길이”지만 “한글 만든 이야기”에 감동하여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의외의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시인의 따스한 눈길이 삶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 있는 따스함을 발견해 냈다. 인공 손난로를 쭉쭉 눌러 따뜻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 속 깊숙히 감도는 따뜻함을 목격하여 그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잖을까.

그렇다고 ‘어린이’ 코드로만 이 두 동시집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일 수 있다. 삶과 자연에 깊이 있는 철학이 시의 언어로 명징하게 작품들도 만만찮게 다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정록의 동시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은 <황사>다. 먼지가 입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 그 것이 흙더미가 되고, 다시 민들레 씨가 입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자리를 틀면, 노란 민들레꽃이 피어날지 모른다는 거다. 황사의 거친 모레알에 대한 우리의 통념으로는 도저히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정록이라는 시인의 따스하고도 익살맞은 상상력이 보태졌기에 탄생한 시다. <달팽이 학교>에서는 느릿느릿 꼼톨 꼼톨 기어가는 달팽이의 특성을 살려 “김밥 싸는 데만 사흘” “소풍 다녀오는 데 일주일”이라고 표현하는 익살도 즐겁다. 그 느림을 보다 못해 숨이 가빠오지만, 그 느림에도 불구하고 할 것 다하는 달팽이들이 사랑스러워진다. <저승까지 거리는>은 어린이가 제삿날이면 자주 보았을 ‘병풍’을 통해 죽음과 삶의 미묘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종득의 <<쫀드기쌤, 찐드기쌤>>에는 그가 살고 있는 섬의 풍경이 좌르륵 펼쳐져 눈 앞에 그려 넣어진다. 최종득쌤을 만나 그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찐드기쌤" 별명을 냅다 크게 불러 주고 싶을 만큼, 따스하고도 인간냄새 나는 풍경을 잘 만들어 건져 올려 주었다. 도시와는 또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바닷가 아이들의 공부하며, 놀며, 일하는 일상이 때로는 생생하게, 또 때로는 가슴 아프게, 또 때로는 아름답고도 따스하게 그려졌다. 이 아이들이 놀며, 공부하며, 일하는 모습은 도시에서 '공부만' '학원만' 다니며 사는 아이들과 비교할 때, 생명 넘치고 쾌활하고 자유로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그릴 때에도 바닷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과의 연결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 최종득 시인의 자연을 그리는 법이라고 할까. <꼬막 터는 날>에서는 꼬막 터는 날 사람도 갈매기도 잔치한다. <엄마와 갯지렁이>에서는 남보다 못 배웠어도 갯지렁이 하나는 기막히게 잡을 수 있다며 가슴 쫙 펴고 당당하고, 행복해 하는 엄마 모습이 그려진다. 최종득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바닷가 아이들과 바닷가 사람들의 따스한 모습을 보는 것이 훈훈하다. 허나, 이런 따스한 시선이 시집의 후반으로 올 때쯤에는 따뜻함 이면에 있는 삶의 다른 측면들을 놓치고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자꾸 내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조금 더 풍성한 시집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따스함에 다시 한 번 의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때, 마지막 시, <걷고 싶어도>가 최종득 시의 다음 시를 기다려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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