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밀린 일이 한 가득이다.
논문준비도
각종 작업들도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 30분이 아까워.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펑 뚫리니.
인터넷 앞에 서서
빈시간만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떠나볼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만만치 않다.
안 좋은 일어 울상이 되어 훌쩍이고 있을 때.
아들이 살며시 다가와서 내 등을 토닥여 준다.
그리고, 내 앞에 와서 띠리리리 영구춤을 추며
"애기씨~"
한다.
아무래도 어디서 들은 '아가씨"를 저 나름대로
"애기씨"로 해석한듯.
"애기씨. 응애 응애. 애기씨, 코를 파서 코딱지를 꺼내서 지구에 바르세요. 행성이 지구를 폭파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애기씨~"
피식 웃으니, 더 오바하며 엉덩이 춤을 추며 인상을 찌부러트리고 말한다.
"애기씨~"
내가 웃으니, 활짝이며 말한다.
"엄마, 살 것 같아?"
"응"
아동문학을 공부한지 2년 반이 됐다.
정리가 필요한 시기다.
그간 참 많이 방황했더랬다.
나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여기 흘렀다 저기 흘렀다, 참으로 몸만 바빴던 세월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폄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쁜 와중에도 읽어 왔던 좋은 작품들 덕에
내게 뿌리박힌 멋진 '이야기'들의 힘으로
넉넉히 살아갈 힘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아동문학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런 이야기들에 매료된 사람들은 넉넉하고 밝다.
어제는 우리 어린이도서관일을 위해 여러 단체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푸근하고도 강강하고도 밝았다.
그들은 풀뿌리 지역 조직 속에서 어린이와 문학, 지역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입에 착착 붙는 전라도 사투리로 엣이야기 한 자락 읽어 주는 모습을 어찌 잊으랴.
참 아름답다 싶었다. 지역은 떨어져 있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본다는 것만으로 힘이 났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들과의 만남이 하나의 에너지가 되고, 어린아와 함께 책을 읽는 기쁨이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있는지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됏다.
대학원은 아동문학의 텍스트를 공부하는 곳이라면,
'지역성과 어린이'는 아동문학의 컨텍스트를 온 몸으로 겪고,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된다.
지역성과 어린이.
이 두 가지의 질문을 손에 쥐고.
(이제 징징 거리는 일은 그만두고)
좀 더 힘차게 걸어가야겠다.
같이 걸어 갈 사람들이 있어 좋고.
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
이따금 시와 소설의 차이를 따지는 질문을 받으면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이라고 답하곤 한다. 이 세상에서(어쩌면 저세상에서도) 아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소설인 터에 언감생심 비하나 폄하의 뜻일 리 없고,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의 속성을 나만의 애정표현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소설은 결코 아름답고 순결하고 고상하기만 할 수 없다. 고리키의 말대로 ‘인간학’에 다름 아닌 그것의 풍미는 삶의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에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무 살 무렵에 박래군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 농투성이같이 시커멓고 허름한 그의 외모가 “소설 좀 쓴다”는 주변의 소개와 그럴듯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탁주처럼 걸쭉한 입담과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미루어보아 이문구풍의 농촌소설을 쓸 것도 같고, 해고자들과 함께 한미은행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구속된 ‘은행 강도’ 이력으로 보면 조세희풍의 강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이을 것도 같았다. 아니, 작가의 외모를 통해 작품의 경향을 넘겨짚는 짓이야말로 하수라고 생각하면, 투박한 그의 손끝에서 의외로 모던한 실험적 문학이 흘러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대학 문학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을 차치하고, 결국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더러운 시절이 문학청년을 투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시절을 탓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고 아무래도 부질없다.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는 어느 시절이라도 더럽고 고단하지만, 그 시간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30년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더러운 시절이라도 끝끝내 싸우며 견디기에 버겁다. 대부분이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꿈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욕망과, 책임이라고 불리는 식솔들의 안위와, 이른바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그곳에 박래군, 그가 남았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란다. 그 이름으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과 명동성당에서 10개월 동안 수배생활을 하고, 1년이 지나서야 치러진 희생자들의 장례식과 삼우제를 마친 후 경찰에 자진출석했단다. 그의 이름 뒤에 붙은 덕적덕적한 직함들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길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대위 언론담당위원까지… 두 살 터울 동생인 박래전 열사가 스물여섯이 되던 1988년에 “광주는 살아 있다”고 외치며 분신한 후 그는 지금까지 역사와 사회와 동생에 대한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다. 유가협에서 같이 일했던 이행자 시인이 “박래군 같은 사람이 다섯 명만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활동가’이자 ‘운동진영의 보배’로 손꼽혀왔다.
같은 과 선후배라는 얕은 인연만으로도 그런 평판이 뿌듯하지만, 웬일인지 내 마음 한편에는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래군이 형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리잡고 있다. 한번이라도 이놈의 ‘문학병’에 걸려 앓아본 사람이라면 이루지 못한 꿈이 어떻게 평생을 깔깔하게 뒤좇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예의 싱검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설은 쓰겠다는 사람도 잘 쓰는 사람도 많지만, 이 일은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
그랬나 보다. 래군이 형은 여전히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이제는 진짜로 아름답고 순결해져서 소설 같은 천역에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유난히 차가운 올겨울, 부디 그가 더는 춥지 않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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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회, 박래군 용산 범대위 집행위원장의 구속수사 결정을 규탄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구속할 수 없다
2010년 1월 13일 밤 11시경 서울중앙지법(담당 판사 김도형)은 이종회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하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해 서울중앙지검(김성주 검사)이 청구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을 결정하였다. 이번 구속수사 결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막으려는 치졸하고 부당한 행위이다.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종회, 박래군과 전철연 남경남 의장은 지난 1월 11일, 사망한 용산 철거민 다섯 분의 장례와 삼오제가 끝나자 자진출두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용산 철거민 열사의 장례를 치른 후에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충분히 밝혀왔다. 이들이 그동안 순천향병원과 명동성당 영안실에서 지내며 용산 범대위 활동을 이어왔던 것은 도피가 아니다. 장례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정부가 용산 참사의 진상을 숨기고 회피하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이종회와 박래군의 구속은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시대의 양심이 아닌 정권에 대한 충심일 뿐임을 입증한다. 철거민들이 용산철거민 1심 재판에서 중형을 받고 갇혀 있는 반면, 살인 진압의 최고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진압 책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다니고 있다. 참사 이후 검찰은 편파적 수사와 기소로, 진상 규명을 가로막아왔다. 그런 검찰이 성실하게 수사에 응한 활동가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사법부가 손을 들어줘서야 되겠는가. 법치가 가진 자들의 명분을 위한 구호일 뿐임을 굳이 확인시켜주려는 것인가.
그동안 용산범대위는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폭력적인 재개발사업의 중단을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시, 용산구청, 경찰이 조합과 건설자본의 개발이익에만 몰두할 때, 정치인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철거민들을 테러집단으로 매도할 때, 검찰이 철거민들만 일방적으로 기소하며 법원의 명령조차 거부해 수사기록을 숨길 때, 용산범대위는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들의 연대로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용산범대위 이종회,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에게 불법 집회 주도 혐의를 붙여 가두려고 한다. 검찰이 제시한 금지 통보된 불법 집회 주도 혐의와 71건의 일몰 후 집회라는 범죄 사실은 부당한 경찰과 정부의 행태를 보여줄 뿐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추모대회를 불법집회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거리로 터져 나오는 인권의 외침을 일반교통방해로 몰아붙였다. 얼마나 구차한가. 올라갈 곳도 내려갈 곳도 없는 그 곳, 한겨울의 화염에 휩싸여버린 그 망루를 기억해내며 다시금 인권과 민주주의의 희망을 찾아내려던 몸부림을, 반인권적 법률 해석으로 옥죄려는 검찰이야말로 두 활동가의 정당성에 대한 반증이다.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을 처벌하려는 이번 검찰과 사법부의 결정을 양심 있는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권 유린에 발을 맞춘 검찰과 법원의 결정을 기억할 것이며 역사의 심판대를 세우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빼앗긴 권리, 표현하고 저항하며 일하고 거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는 더욱 싸움의 고삐를 잡아쥘 것이다.
2010년 1월 14일
인권단체연석회의
어린이를 위하여 옛이야기 한 자락 풀어 줄 수 있는 푸근한 사람이 되기 위하야 노력 중이다.ㅋㅋ
아직 무지 서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우쭐해 진다.
"우아..." 하거나, "아까 그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한거구나" 라며 이야기에 개입하여 들어올 때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푸핫핫.
울 병윤이에게도 밤마다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줘 볼까 시도한다.
씨니컬한 병윤이. 내가 조금이라도 애매한 표현을 쓰면 그 즉시 따져든다.
"옛날에, 산에서 나무를 베가지고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이 있었어"
"으이그, 이 세상에 나무를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딨냐?"
아차차...ㅋㅋ 정확한 표현을 쓰지 않고 "먹고 산다"는 애매한 수사적 표현을 쓰니,
여섯살난 병윤이 어이없어 한다. 직유를 쓰기로 고쳐먹고,
"아니아니, 산에서 나무를 잘라다 시장에 팔아서 번 돈으로 말이지....."
라고 이야기를 다시 끌고 나갔다. 핫.
이렇게 실수가 많지만, 옛이야기를 알아 간다는 것이 즐겁다.
예전엔 옛이야기 이론서를 읽으며 그 세계를 알아 가려고 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론을 알기 이전에, 즐겁고도 재밌는 이야기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더 먼저다.
좀 더 욕심을 내어, 옛이야기 속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좋은 이야기를 모아 내야지 하는 야심을 품어본다. 흐흐.
민중들의 입으로 전해지며 갈리고 닦인 이야기 속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것들이 들어있다.
옛이야기는 일종의 민중판타지란 생각이 든다. 좋다! 행복하고도 풍요롭다.
여튼. 이야기 한 자락을 사랑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이,
세상의 물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힘겹게 헤엄쳐 가는 우리들의 내면을 두툼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얼마 전 나의 지인이 한 말 처럼,
"우리가 동화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