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런 와중에, '사람답게 산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흙바닥에 몸을 굴리어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인권운동가 박래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
박래군은 온 세월을 인권운동에 바치면서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고,
하나의 보석이 되기 보다는 흙알갱이 중 하나게 되는 강강함으로,
인권 운동의 자장 안에서 한 번도 물러서본 일이 없는 인물이다.
정말이지, 그의 활동을 보아오면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 에만,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 지고
사람다운 삶이 조금이라도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기꺼이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만,
어디 쉬운 일이랴.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자격상실이다.
자격상실의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치는 이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값지겠다 싶다.
김별아의 박래군에 대한 글과 구속수사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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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군이 형
김별아(한겨레 세상읽기)
이따금 시와 소설의 차이를 따지는 질문을 받으면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이라고 답하곤 한다. 이 세상에서(어쩌면 저세상에서도) 아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소설인 터에 언감생심 비하나 폄하의 뜻일 리 없고,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의 속성을 나만의 애정표현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소설은 결코 아름답고 순결하고 고상하기만 할 수 없다. 고리키의 말대로 ‘인간학’에 다름 아닌 그것의 풍미는 삶의 진창에 코를 박고 짓무른 상처에 뺨을 비빌 때에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무 살 무렵에 박래군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 농투성이같이 시커멓고 허름한 그의 외모가 “소설 좀 쓴다”는 주변의 소개와 그럴듯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탁주처럼 걸쭉한 입담과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미루어보아 이문구풍의 농촌소설을 쓸 것도 같고, 해고자들과 함께 한미은행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구속된 ‘은행 강도’ 이력으로 보면 조세희풍의 강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이을 것도 같았다. 아니, 작가의 외모를 통해 작품의 경향을 넘겨짚는 짓이야말로 하수라고 생각하면, 투박한 그의 손끝에서 의외로 모던한 실험적 문학이 흘러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대학 문학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을 차치하고, 결국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더러운 시절이 문학청년을 투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시절을 탓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고 아무래도 부질없다.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는 어느 시절이라도 더럽고 고단하지만, 그 시간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30년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더러운 시절이라도 끝끝내 싸우며 견디기에 버겁다. 대부분이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꿈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욕망과, 책임이라고 불리는 식솔들의 안위와, 이른바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그곳에 박래군, 그가 남았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이란다. 그 이름으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과 명동성당에서 10개월 동안 수배생활을 하고, 1년이 지나서야 치러진 희생자들의 장례식과 삼우제를 마친 후 경찰에 자진출석했단다. 그의 이름 뒤에 붙은 덕적덕적한 직함들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길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대위 언론담당위원까지… 두 살 터울 동생인 박래전 열사가 스물여섯이 되던 1988년에 “광주는 살아 있다”고 외치며 분신한 후 그는 지금까지 역사와 사회와 동생에 대한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다. 유가협에서 같이 일했던 이행자 시인이 “박래군 같은 사람이 다섯 명만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활동가’이자 ‘운동진영의 보배’로 손꼽혀왔다.
같은 과 선후배라는 얕은 인연만으로도 그런 평판이 뿌듯하지만, 웬일인지 내 마음 한편에는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래군이 형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리잡고 있다. 한번이라도 이놈의 ‘문학병’에 걸려 앓아본 사람이라면 이루지 못한 꿈이 어떻게 평생을 깔깔하게 뒤좇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예의 싱검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설은 쓰겠다는 사람도 잘 쓰는 사람도 많지만, 이 일은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
그랬나 보다. 래군이 형은 여전히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이제는 진짜로 아름답고 순결해져서 소설 같은 천역에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유난히 차가운 올겨울, 부디 그가 더는 춥지 않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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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회, 박래군 용산 범대위 집행위원장의 구속수사 결정을 규탄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구속할 수 없다
2010년 1월 13일 밤 11시경 서울중앙지법(담당 판사 김도형)은 이종회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하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에 대해 서울중앙지검(김성주 검사)이 청구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을 결정하였다. 이번 구속수사 결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막으려는 치졸하고 부당한 행위이다.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종회, 박래군과 전철연 남경남 의장은 지난 1월 11일, 사망한 용산 철거민 다섯 분의 장례와 삼오제가 끝나자 자진출두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용산 철거민 열사의 장례를 치른 후에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충분히 밝혀왔다. 이들이 그동안 순천향병원과 명동성당 영안실에서 지내며 용산 범대위 활동을 이어왔던 것은 도피가 아니다. 장례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정부가 용산 참사의 진상을 숨기고 회피하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이종회와 박래군의 구속은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시대의 양심이 아닌 정권에 대한 충심일 뿐임을 입증한다. 철거민들이 용산철거민 1심 재판에서 중형을 받고 갇혀 있는 반면, 살인 진압의 최고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진압 책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다니고 있다. 참사 이후 검찰은 편파적 수사와 기소로, 진상 규명을 가로막아왔다. 그런 검찰이 성실하게 수사에 응한 활동가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사법부가 손을 들어줘서야 되겠는가. 법치가 가진 자들의 명분을 위한 구호일 뿐임을 굳이 확인시켜주려는 것인가.
그동안 용산범대위는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폭력적인 재개발사업의 중단을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시, 용산구청, 경찰이 조합과 건설자본의 개발이익에만 몰두할 때, 정치인들이 적반하장 격으로 철거민들을 테러집단으로 매도할 때, 검찰이 철거민들만 일방적으로 기소하며 법원의 명령조차 거부해 수사기록을 숨길 때, 용산범대위는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들의 연대로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용산범대위 이종회,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에게 불법 집회 주도 혐의를 붙여 가두려고 한다. 검찰이 제시한 금지 통보된 불법 집회 주도 혐의와 71건의 일몰 후 집회라는 범죄 사실은 부당한 경찰과 정부의 행태를 보여줄 뿐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추모대회를 불법집회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거리로 터져 나오는 인권의 외침을 일반교통방해로 몰아붙였다. 얼마나 구차한가. 올라갈 곳도 내려갈 곳도 없는 그 곳, 한겨울의 화염에 휩싸여버린 그 망루를 기억해내며 다시금 인권과 민주주의의 희망을 찾아내려던 몸부림을, 반인권적 법률 해석으로 옥죄려는 검찰이야말로 두 활동가의 정당성에 대한 반증이다.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을 처벌하려는 이번 검찰과 사법부의 결정을 양심 있는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권 유린에 발을 맞춘 검찰과 법원의 결정을 기억할 것이며 역사의 심판대를 세우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빼앗긴 권리, 표현하고 저항하며 일하고 거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는 더욱 싸움의 고삐를 잡아쥘 것이다.
2010년 1월 14일
인권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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