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2009년 여름호 특집
인문학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 글 몇 편을 읽었다.
인문학이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됨'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노숙자, 수감자와 함께하는 인문학 교실이 주는 의미는 무얼까도 생각해 본다.
인문학이 소통되는 방식과 구조를 변혁시켜 나가는 것이, 어쩌면 인문학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는 것 이상으로 혁명적 의미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화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나 혼자 유토피아의 낭만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를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어린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폭력적, 경쟁위주의 실용적 관점이 만들어내는 여려 현상들과 접했을 때,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아서 괴로웠을 때도 많았다.
이런 자괴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화가 다루고 있는 서사가 얼마나 현실을 담고 있나를 분석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하나의 동화책이 이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린이와 소통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구조 속에서라면 우리는 '나쁜 동화'들도 '좋은 자양분'이 되는 방식으로 토론할 수 있을지 모른다.
키워드들
- 인문정신 또는 이념으로서의 인문학과 제도로서의 인문학 (백영서)
- 파편적 지식을 종합하고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감각을 길러주며 현재의 '삶에 대한 비평'의 역할을 하는 인문학으로 혁신되어야 (백영서)
- 경성제국대 제도 안의 인문학은 사회적 요구와 괴리 --> 70년대 민족문학, 민족사학으로 극복 --> 다시 제도로 진입 (백영서)
- 근대 이전의 학자 : 깨달음이나 실천 (최원식)
- 학문은 기본적으로 나를 닦고 나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나의 자유를 추구하는 거죠. 그게 결국은 사회적 인격과 같이 가서 사회적 인격을 높이려면 나의 인격을 높이고, 나의 인격을 높이려면 사회적 인격을 높이는 식의 선순환이 있어야 진짜 공부지요. (최원식)
- 자기와의 소통 + 새로운 실천의 문제 (백영서)
- 자기를 위한 것과 사회를 위한 것이 같이 가야 한다는 전통학문의 덕목을 되살릴 필요 (백영서)
- 국가 권력의 변화, 생활 세계의 변화
- 학술 게릴라
- 프로문학은 결국 식민지적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위에서 자신의 논의를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몰락한 것(최원식)
- 현장에 밀착한 논쟁적 글쓰기
- 인간됨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도구화(오창은)
- 세상을 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오르지 않고......인간에 대한 파편화에 갇힘(오창은)
- 미래 사회의 희망을 잉태하는 해방구 / 자본주의 체제와 불화 (오창은)
- 지식인의 글쓰기가 논문쓰기로 고착, 논문의 생산성만 중요해짐 (오창은)
- 민주주의적 가치와 소통하지 못하는 논문 중심의 인문학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오창은)
- 인간성을 둘러싼 세계관의 싸움 / 인간성의 위기에 대한 통찰 (오창은)
- 제도는 인간을 가두는 것이고 인문학은 제도로 갇히지 않는 인간 삶의 심층을 발굴해내는 학문(오창은)
- 인문학의 위기는 제도건 인문학의 위기 (고봉준)
- 자신의 앎에 대한 믿음 (고봉준)
- 제도권 인문학에 부재하는 것은 앎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 (고봉준)
- 제도권 인문학은 인문학을 정보나 지식의 차원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이 '개입'의 능력을 잃었다 (고봉준)
- 삶에 개입하는 능력 (고봉준)
- 앎이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 /행복하게 살기 위해, 좋은 삶을 구성하기 위해 공부를 선택 (고봉준)
- 앎이 다만 현란한 지식의 과시에 그치지 않도록 삶을 갱신하려고 노력하는 것 (고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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